[한마당] 불수능 물수능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어렵고 쉬운 정도를 놓고 불수능, 물수능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2000년 11월 15일 실시된 2001학년도 수능에서 400점 만점자가 66명, 390점 이상 고득점자가 2만5000명 넘게 쏟아져 나왔다. ‘수리 한 문제만 빼고 모든 문제가 쉬운 수능’이었다. 제2 외국어 중국어 시험에서는 ‘一 二 三 四’만 알면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 끝내 수능 만점을 받고도 서울대에서 탈락한 학생이 나오면서 20세기의 마지막 수능은 물수능의 효시가 됐다.

다음해에는 더 큰 난리가 났다. 물수능 탈출이라는 강박이 불수능을 만들었다. 만점자는 한 명도 없었다. 총점 평균이 문과는 98점, 이과는 91점 하락했다. 시험 중 고사장을 뛰쳐나간 학생이 전년의 2배가 넘는 2500명에 달했고, 성적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이 속출한다는 소문까지 돌며 분위기가 흉흉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었던 학부모와 학생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고 사과해야 했다. 한완상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서 “지난해보다 어렵되 재작년보다는 쉽게 출제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이렇게 난도가 높아 저 자신도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여태 수능 난이도 논란이 없었던 해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1996~97학년도는 역대 가장 어려웠고, 1999~2001학년도는 눈에 띄는 물수능이었다. 2011학년도는 불수능이었다가 그 다음해 다시 물수능으로 돌아갔다. 최근 5년은 변별력이 강조되며 불수능 기조를 이어가는 중이다. 수능은 쉬워도, 어려워도 걱정이다. 불수능이면 최상위권은 선방하고 중하위권은 점수가 올라가는데 2~4등급 학생이 처절하게 무너진다. 물수능에는 상위권 학생의 변별력이 통째 사라진다. 하지만 언제까지 난이도를 ‘적당한 수준’으로 맞추는 데 매몰돼 있을지 답답할 뿐이다. 수능이 쉽고 어려운 게 문제가 아니라 사교육 시장을 기웃거리지 않고 학교 수업 열심히 듣는 학생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Source link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