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의 ‘공교육 교과과정 내 수능 출제’ 언급이 발언 진의 문제를 떠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 문제로 번졌다. 정부가 “수능 난이도 언급은 아니었다”고 진화에 부심하지만, 입시 현장에서는 현재 ‘불수능(어려운 수능)’보다는 난도가 낮아질 것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수능 언급 직후 지난 6월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 실패의 책임을 물어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 착수 발표가 이어지자 쉬운 수능 예측은 더욱 힘을 받는 모습이다. 하지만 입시 전문가들은 수능이 쉽게 출제된다고 내다보고 준비에 소홀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수의 입시 전문가는 올해 수능에서 이른바 ‘킬러문항’으로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이 자취를 감출 것으로 전망한다. 초고난도 문항은 상위권 변별을 위해 출제 당국이 고안해낸 장치다. 통상 과목 간 경계를 넘어 다양한 내용을 뒤섞어 만든다. 상위권 학생들의 우열을 가리는 데 활용되므로 공교육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괴물’ 문항으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윤 대통령이 직접 ‘불공정’ 사례로 지목한 만큼 올해 수능에서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초고난도 문항 혹은 이보다 약간 쉬운 준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고 상위권 변별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윤 대통령은 ‘공정한 수능’을 강조하면서도, 변별력 역시 놓치지 말라고 교육부와 평가원에 주문했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불수능’ 기조가 갑작스럽게 ‘물수능’으로 전환되면 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 파문으로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은 40% 이상이 됐다. 많은 대학에서 ‘수시는 학생부, 정시는 수능 위주’라는 대입 원칙에 따라 수능 100% 전형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보다 수능 변별력이 한층 중요한 상황이란 뜻이다. 더구나 갈수록 ‘의대 쏠림’ 현상이 짙어지면서 의대·약대 등 진학을 위한 ‘N수생’이 크게 늘고 있다. 변별력을 잃어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하락하는 상황이 빚어지면 N수생은 더 늘어나고 사교육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출제 당국이 어떻게든 변별력은 확보하려고 노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전직 교육부 고위 관료는 “실제 물수능으로 상위권에서 변별력 대란이 벌어져 입시 전반이 혼란스러워지면 그 여파는 입시가 종료되는 내년 2월 말 내지는 3월 이후까지 지속될 수 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이런 상황만큼은 피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상위권 변별력을 확보하는 방식에 대해 교육부는 아직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이 수험생 혼란이 증폭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출제 관련한 전문가들과 상의하겠다”고만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교과서 안에서 출제한다고 무조건 쉬워지는 것도, 밖에서 나온다고 무조건 어려워지는 것도 아니다. 지문 출처가 아니라 질문의 각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난이도가) 달려 있다. 현재는 아무것도 예측하기 어려우며 수험생 모두 똑같은 처지”라고 말했다. 이어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정상 페이스 속에 차분하게 기존 출제 유형을 철저히 익히며 6월 모의평가 결과를 분석하고 9월 모의평가를 기다릴 때”라고 조언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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