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 보안군은 두달 전 어느날 밤 수도 카불 인근의 ‘이슬람국가’ 테러리스트 은신처를 공격하기 위해 매복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보안군 공격팀은 자동소총으로 완전무장한 채 하비브 라만 인콰야드 팀장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콰야드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지휘부에 은신처의 정확한 위치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지휘부는 미국산 메신저앱 ‘왓츠앱(Whatsapp)’으로 보냈다고 했지만, 인콰야드는 전혀 받지 못했다. 인콰야드의 왓츠앱 계정은 아예 로그인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페이스북 운영사인 메타가 만든 왓츠앱은 미국판 카카오톡이다. 인터넷으로 전화걸기, 톡 보내기, 멀티미디어 전송 등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통화 품질이나 화일 전송은 전 세계 어느 나라 메신저앱보다 안정적이며 속도도 빠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탈레반 정부는 거의 공식적으로 주요 교신 수단으로 이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올해초부터 왓츠앱은 탈레반 정부에 소속된 주요 인사와 탈레반 군 장교, 경찰과 주요 공무원 등의 계정을 차단했다. 탈레반이 인권 유린과 여성 탄압 등으로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탈레반 보안군 공격대의 이슬람국가 소탕작전은 완전 허탕으로 끝났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그들은 기지로 되돌아갔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가 왓츠앱 메신저 덫에 걸려 통신 불가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의 왓츠앱 사랑은 2년전 친미 아프간정부를 전복시키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산악지대가 많고 인프라가 열악해 유선 전화 통신망이 엉망인 현지 사정때문에 이들은 위성인터넷 통신망까지 해킹하며 왓츠앱을 사용해 서로 소통했다. 정부군에 대한 공격작전과 게릴라전 전술도 이 메신저를 통해 주고 받았을 정도였다.
탈레반측은 반군 시절 왓츠앱의 보이스 메시지 기능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과 신념, 종교적 순수성을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설파하는 ‘프로파겐다 작전’까지 펼친 걸로도 유명하다.
탈레반은 자신들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에도 왓츠앱으로 정부를 운영해왔을 정도다. 모든 부처가 이 앱을 통해 주요 지시사항을 소속 공무원들에게 전달하고 집행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70% 이상이 왓츠앱을 사용해 서로 전화와 톡을 주고받고 있으며, 외국에 나간 친척 지인들과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의 이같은 통신방식은 지난해부터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미국이 자체 제제뿐 아니라 서방 주요국가와의 ‘국제 제재’ 공조까지 나서면서 왓츠앱 이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타격은 위성 인터넷망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대부분 미국과 서방 국가의 보안 위성인터넷망뿐 아니라 이들 국가 소속 기업들의 위성인터넷이 전부 아프가니스탄 지역 서비스를 차단해버렸다.
올해부터는 미국정부의 압박을 받은 메타측이 탈레반 정부와 군, 경찰 인사들의 개인 계정을 다 차단하기 시작해, 이제는 특별한 지위를 갖지 않은 중간간부급 인사들의 계정까지 다 먹통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글란 지역의 샤르 아메드 부르하니 ‘탈레반경찰’ 대변인은 신문과의 접촉에서 “왓츠앱은 내게 거의 전부나 다름없다”면서 “모든 일이 이를 통해 이뤄지는데, 왓츠앱이 먹통된 건 아예 행정과 경찰 기능이 올스톱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언급했다.
부르하니 대변인은 이어 “탈레반 행정부의 거의 모든 기능이 지금 다 멈춰버리고 있는데, 앱 하나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미국의 제제는 정말 너무 나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탈레반 인사들은 왓츠앱이 기존 계정을 차단하면 새 계정을 만들어 또 접속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있지만, 왓츠앱측은 그럴때마다 귀신같이 이들의 새 계정을 찾아내 차단하고 있다.
NYT는 “동일인의 ‘더블’ ‘트리플’ 계정을 찾아내는 건, 디지털 통신 기록 전체를 관리하는 메타로선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면서 “대규모 경제 제재가 아니더라도, 미국은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아프간 탈레반정부를 극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평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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