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오랜만에 ‘최후의 보루’ 역할 한 대법원-국민일보


필자조차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판결이다. 1심과 2심 재판부가 모두 대기업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가. 그런 사안을 대법원이 일거에 뒤집어버리다니…

최근 정치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대법원이 나름 용기를 낸 판결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와 여당은 그들의 의도와 다르게 판결한 대법원을 성토하며 판결의 의미를 깎아내리기 바쁘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 파업에 참여해서 울산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한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파업과 공장 점거로 인해 278시간 동안 공정이 중단돼 입은 손해 중, 20억원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조합원들의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서 조합원 4명이 연대해 회사가 청구한 20억원 전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조합원들의 책임을 50%로 제한해 전체 배상금을 135억7000만원으로 산정했으나, 현대자동차가 청구한 금액을 넘어서 판결할 수 없으므로 20억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법한 쟁의행위를 결정하고 주도한 주체인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 등의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같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고, 손해의 공평, 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도 어긋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 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면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기존에는 불법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개인도 파업을 결정한 노동조합과 똑같이 배상 책임을 져왔다. 불법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수억원 내지는 수십억원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되고, 각 개인이 손해배상금을 감당하지 못하면 연대 책임으로 또 다른 파업 참여 노동자가 손해배상을 온전히 떠안아 왔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건이다. 파업은 결국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결정한 노동조합이 아닌 개별 하청 노동자 5명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은 소위 ‘노란봉투법’ 논의에 불씨를 당겼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노란봉투법’ 중에는 “법원이 조합원 등의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그 손해에 대해 각 배상 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범위를 정하도록 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같은 취지다.

현재 노란봉투법은 대통령 거부권까지 고려되고 있고, 현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을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후 법원 판결의 기준이 될 판례로 남아 노란봉투법의 입법 취지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는 법원이라고 한다. 대법원이 오랜만에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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