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3개 부처가 각기 다른 기술 육성법을 만든 데는 산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육성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예산이나 조직이 중복돼 비효율적으로 정책이 집행된다는 우려가 크다.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시행하면서 한국 정부도 정부 차원의 산업 보호 정책을 법을 통해 지원하자는 취지지만, 미국에 대응하는 성격이 커 중구난방으로 법안과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3개 부처가 모두 주요 산업으로 지정한 경우 행정력 낭비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바이오 분야는 산업부와 과기부에서 각각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를 위한 예산·인력이 중복으로 투입된다.
과기부와 산업부의 기술 육성 정책도 중복된다. 과기부는 원천기술, 기초 분야에 있어서 과학기술을 지원하고, 산업부는 그 기술을 실용화해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두 분야가 겹치는 ‘그레이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업부는 앞서 과기부 소관의 국가전략기술육성에 관한 특별법 심사 당시 “국가첨단전략산업법과 유사하거나 중복돼 제명 변경 및 명확한 차별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유사입법 제정은 두 법 모두의 입법 효과를 저해하는바, 관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의 개정을 통한 기능 강화를 지향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18일 “미국이 IRA법, 칩스법을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가 이에 급작스럽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니 중구난방처럼 정책이나 법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안이 있을 때마다 각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정책적 큰 그림이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종영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진국의 정책과 법령에 하나하나 따라가기보다는 우리의 경제 안보 목표에 다가가는 법령으로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 간 무한경쟁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보다는 우리 첨단전략산업의 전략적 지향점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법·제도의 운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낭비를 막기 위한 정부 부처 간 협력 필요성은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2012년에는 융합행정, 2014년에는 협업 행정 등 각 정부에서 행정개혁을 추진했으나 ‘칸막이 행정’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실패 원인으로는 협업 유인 부재가 지목된다. 다른 부처의 협업 자체도 번거로운데 협업으로 탄생한 결과를 다른 부처와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과정은 번거로워지고, 그로 인한 공은 인정받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유인 없는 자발적 협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등 상급 부처에서 협업 필요성을 제기해야 한다”며 “중첩 사업을 덜어내거나 핵심 사업을 협업하는 등 컨트롤타워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권민지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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